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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olic Bible/구약성경

구약성경 코헬렛서 솔로몬 임금의 무소유에 관한 이야기.

by 지혜로운이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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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코헬렛서 솔로몬 임금의 고백. 무소유에 관한 내용

성경을 통해 세상을 배우다
솔로몬 임금의 속마음을 알아보자
진정한 무소유의 의미
나의 삶에서 생각하는 코헬렛서 구절들.

무소유란? 구약성경 코헬렛서에서 찾아보도록 합시다. 

 

 안녕하세요. Lazarus Kong(공준성 나자로)입니다. 구약성경 코헬렛서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이스라엘 임금으로 설명을 하는데,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이라는 표제를 보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의 고백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솔로몬의 고백에서는 "허무로다. 허무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요. 우리가 잘 알려진 책이 있죠. 혜민 스님의 무소유. 무소유를 외쳤지만 많은 것을 가진 스님이었다는 뉴스들을 접하시기도 하였는데 성경을 통해 세상을 배우다는 저의 하나의 콘텐츠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무소유를 이스라엘 지혜의 임금이었던 '솔로몬의 무소유'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코헬렛서의 표제와 주제, 그리고 머리말을 읽어보고 솔로몬 임금의 고백을 주로 볼 것입니다.

주제.[코헬렛 1장 2절]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머리말.[코헬렛 1장 3-11절]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이와 같이 전문의 내용들을 읽었을 때,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만물의 모든 것들은 이미 정해져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미리 다 정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짧은 인생의 기간동안 사람은 그저 한 인생을 살다 사라져가는 세상의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칩니다.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는 의미에서 주제를 함축적으로 정한 '허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자연의 이치는 창조된 때로부터 그 이치에 따라 흘러가고 채워가고 그대로 그 존재를 지니지만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욕심을 내비치며 새로운 것이라 말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사실을 말합니다. 

 저는 성경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성악설을 기반한다는 논제를 말하였었는데, 인간은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임금은 깨달았습니다.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라고 표현하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2019.05.10 - [성경인문학[Bible]/구약성경] - 성악설_성경으로 보는 하느님의 생각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지요. 가진 것보다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고, 예전에 것을 변형시키며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옛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님비현상, 일명 냄비근성이라고도 하지요.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언처럼 예전 일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 또한 매한가지라는 성경 말씀처럼 그 일은 반복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치 변혁도 마찬가지지요. 민주주의, 사회주의, 독재정권 등 다양한 정치 형태도 사이클을 돌고 경제 또한 사이클을 돌며 역사는 반복되는 역사라고 하는 것이 제가 깨우쳤던 이야기였습니다. 

2019.07.15 - [나의역사(My story)/공준성(LazarusKong) 생각] -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들~ [Lazarus prediction]

 중간중간에 썼던 글들을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어서 솔로몬 임금 당시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임금의 고백이라는 코헬렛서 구절을 읽어보도록 하죠.

pixabay Jesus, Solomon, David

임금의 고백.[코헬렛 1장 12-18절, 2장 1-11절]
 나 코헬렛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임금이었다.
 나는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지혜로 살펴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괴로운 작업이었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려질 수 없다.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보라, 나는 내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지혜를 크게 더하였으며 내 마음은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익혔다.'
 나는 지혜와 지식, 우둔과 우매를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붙잡는 일임을 깨달았다.
 지혜가 많으면 걱정도 많고 지식을 늘리면 근심도 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너를 즐거움으로 시험해 보리니 행복을 누려 보아라!"
 그러나 보라, 이 또한 허무였다.
 웃음에 대하여 나는 말하였다. "어리석은 짓!"
 또 즐거움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것이 무얼 할 수 있으리오?"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한정된 생애 동안 하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깨치기까지 내 마음이 지혜로 모든 것을 이끌게 하면서
 술로 이 몸에 생기를 돋우어 우매함을 알아보리라고 속으로 작정하였다.
 나는 큰 공사를 벌였다.
 나를 위하여 궁궐들을 짓고 포도밭들을 일구었으며
 나를 위하여 정원과 공원을 만들어 거기에 온갖 과일나무를 심었다.
 또한 나를 위하여 못을 만들었으니 무성히 자라는 나무숲에 물을 대려는 것이었다.
 나는 남종들과 여종들을 사들였고 씨종들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더 많은 가축들, 소 떼와 양 떼가 있었다.
 나는 또 나를 위하여 은과 금, 임금들의 소유물과 영토를 모아들였다.
 나를 위하여 남녀 소리꾼들과 인간의 아들들의 즐거움인 궁녀들을 더 많이 두었다.
 나는 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더 크고 부유하게 되었으며 나의 지혜 또한 내 앞에 서 있었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 뿌리치지 않았고 내 마음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 내 마음은 나의 모든 노고에서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모든 노고에 대한 몫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 손이 이룬 그 모든 위업과 일하면서 애쓴 노고를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일. 태양 아래에서는 아무 보람이 없다.

 위의 성경구절에서 가장 와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코헬렛서에서의 내용을 써보도록 하죠.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보라. 나는 내 이전에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지혜를 크게 더하였으며 나 마음은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읽혔다.' 나는 지혜와 지식, 우둔과 우매를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붙잡는 일임을 깨달았다. 지혜가 많으면 걱정도 많고 지식을 늘리면 근심도 늘기 때문이다. 지혜와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나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30살까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자. 그 속에서 어떻게 시스템들이 운영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생각했던 나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 그리고 학교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반론들이 그리고 사회가 왜 나를 평가해? 너희가 뭔데 나를 시험하고 나의 생각은 묵살하고 너의 생각들이 맞다고 강요하는거야. 등의 생각들에 맞서 싸우고 세상의 본질인 '정의'가 무엇이고 '정의롭게,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생애를 살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그 모든 것이 허무였다고 생각하였다. 사무직에 있을 때는 월급 15만원 더 받는다고 많은 업무의 폭탄을 받는 것이 싫어 영업 그리고 사업분야를 도전하였어도 많은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상생'하기 위한 것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은 너무 느껴버렸다. 삶에서 사람들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넘쳐났고, 예전의 '공동체주의' '배려' 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삶이 최고의 삶으로 타인의 피눈물이 자신들의 행복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정의가 아닌 사회 속의 정의가 되어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등을 볼 때 결국에는 지혜가 많고 지식이 많다하여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 내 가정의 평화를 내 가정이 더 잘 살아가기를 생각하고 지혜와 지식을 아무리 머리를 짜내더라도 부질없다는 사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잘 살아가든 못 살든지 간에 결국에는 자연의 하나의 존재일 뿐. 결국 죽으면 땅에 묻혀 자연으로 가는 길이기에 그것 모두가 '허무'라는 것이었다는 내 경험이었다.

실망스러운 결과. [코헬렛 2장 12-26절]
 임금의 뒤를 잇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
 선왕이 이미 이룩한 것밖에는!
 지혜와 우둔과 우매를 돌이켜 보았을 때
 나는 어둠보다는 빛이 더 쓸모 있듯 우매함보다는 지혜가 더 쓸모 있음을 보았다.
 지혜로운 이의 눈은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자는 어둠 속을 걷는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운명을 겪게 됨을 나는 또한 알아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나도 겪을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지혜를 추구하였던가?'
 그래서 이 또한 허무라고 속으로 말하였다.
 지혜로운 이에 대해서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건 영원한 기억이란 없으니  앞으로 올 날에는 모든 것이 잊히는 법.
 아, 정녕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자와 함께 죽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 좋지 않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내가 애써 얻었건만 내 뒤에 오는 인간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내 모든 노고의 결실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태양 아래에서 애쓴 그 모든 노고에 대하여 내 마음은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또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
 그분을 떠나서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으랴?
 하느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인간에게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내리시고
 죄인에게는 모으고 쌓는 일을 주시어
 결국 당신 마음에 드는 이에게 넘기도록 하신다. 
 이 또한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이어 위의 말에 가장 머리에 스쳐가는 것. "아, 정녕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자와 함께 죽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다 아무런 필요가 없다. 어떤 하나가 특출나다 하더라도 결국 삶은 똑같다는 의미다.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허무요. 어떻게 죽었는가보다 결국 개인적인 면으로 바라봤을 때 똑같이 죽어가는 우리가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왔다하여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다 할 것 없다는 이야기다.

 정의만을 추구하였던 성공만을 추구하였던 거기서 선을 선택하였던 악을 선택하였던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에 대한 결말은 하느님께서 정해주시는 것. 이 세상 한 번 살다 떠나는 것 가운데 그 어떤 게 중요하리요. 아무런 필요없다. 각 분야에 사람들의 삶에 간섭할 필요도 없으며 그들의 사상을 개혁할 필요도 없다. 결국 그들 또한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께서 만들어 낸 피조물에 불가하니 말이다. 

 

 코헬렛서는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임금이었다는 표현을 볼 때 솔로몬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게 코헬렛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허무로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고백하며 그 죽음에는 사람은 결국 회상하는 가운데 그 지혜의 결론은 바로 '허무'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 아래의 피조물 중 하나. 자연 속에 별 것 아닌 하나의 존재일 뿐.'으로 저는 해석을 했습니다. 물론 저 또한 얼마 살지 않은 31년 생애동안의 스쳤던 일들이 그리고 지금 세상에 대한 회의감과 좌절감에서 다시 한 번 충전 중인 제게 지혜로웠던 그 말들이 코헬렛서에 담겨있었던 것 같네요.

 이상 글을 마치며 잠언서와 코헬렛서는 가장 현대인에 초점이 잘 맞춰져 있는 성경이라고 생각됩니다. 꼭 성경안의 고고학에서 그 모든 것을 찾아보시길 바라며 유튜브 링크 하나 올리고 글을 마칩니다.

 이상 끝. 

 

[공준성 나자로, Lazarus Kong, 성경듣기 유튜브]

 

성경듣기 유튜브 <윤 마리젬마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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