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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valuation/한국사(Korea history)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립 역사, 정통성에 대한 논란 끝장정리.

by 지혜로운이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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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살펴보기
정통성과 법통성을 가진 대한민국임시정부.

 

 안녕하세요. 공준성 나자로(Lazarus Kong)입니다. 내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제 103주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어떻게 창립이 되었는지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환국 직전의 정부요인들과 임시정부청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월 1일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경술국치(한일병합조약)와 그로 인한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리된 임시정부며, 줄여 임정(臨政)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립은 한일병합조약을 통해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본 제국에게 양도한 행위는 무효며, 포기한 주권은 대한민국에게로 승계되었다는 정신이 확립되었다는 대동단결선언이 있다. 이에 따라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가 열리자, 신한청년당은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김규식)를 파견, 일본에는 장덕수 파견해 2.8독립선언을 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소식들이 식민지 조선에 전해져 독립에 대한 희망이 생겼고, 대상황 고종의 사망으로 군중이 운집한상황에 기미독립선언이 일어났다.

 독립선언에 대한 결과 :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창설했고, 여기에 국호와 정부형태, 임시헌법 등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제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였다. 이때, 여운형은 "대한이란 말은 조선왕조 말엽에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느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 반대하였으나, 후에 그의 조직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내세운 국호도 조선인민공화국이었다. 다음 날인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여 상해임시정부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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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임시정부 수립일은 4월 13일로 알려져있었으나, 당시 임시정부에서 4월11일에 정부 수립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구체적인 자료가 공개되어,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기념일 일자 변경을 요구, 2018년 4월 13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1일로 환원하기로 결정했고 2019년부터 4월 11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하기로 했다. 30년 만에 임시정부 생일을 바로 잡게 되었다. 구체적인 자료는 동아일보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래 링크를 통해서 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논란]

 상해임시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가치를 내걸고 경성부에서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한 한성정부가 대조선공화국을 국호로 하여 13도 대표 국민대회의 명의로 선포(1919년 4월 23일)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한국민의히가 결성(1919년 3월 17일)되었다. 상기 단체 외에도 1919년 고려 임시정부, 신한민국 임시정부, 조선민국 임시정부 등 여러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있었으나 임시정부를 칭하는 세력들이 분산되어 있을수록 항일투쟁이 힘들다는 의견이 모아져 서로 통학 계획을 하게 되는데, 참고로 이승만은 고려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신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방총리로, 조선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집정관총재 겸 국무총리로 추대되었었다.

 이에 대한국민의회, 상해임시정부가 먼저 통합을 하기로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라는 위치 문제로 좌절되었었다. 그러나 대한국민의회의 대다수를 임시의정원에 포함시킨다는 조건으로 결국 통합되었고 한반도에는 한성정부와의 통합 역시 난관이 있었으나 한성정부가 국제언론에 노출되었다는 점, 국내에서 13도 대표 국민대회를 통해 결성되었다는 점 등 정통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정통성과 기틀에서 한성정부를 따르는 대신에 위치와 국호에서는 상해임시정부를 따르는 것으로 합의안을 완성했으니 이게 바로 1919년 9월 11일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추대하면서 새롭게 통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결성되었다.

 참고로 상해임시정부를 제외한 여러 단체들은 물론 실질적으로 임시정부이긴 했어도 임시정부라고 자칭한 적은 없었고, 임시정부는 정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각 단체들은 국호인 고려, 신한민국, 조선민국, 한성정부의 대조선공화국 등을 그대로 각각 사용하다가 통합에 따라 상해임시정부의 대한민국으로 통일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10년의 노예 생활을 벗어나 오늘에 다시 독립대한의 국민이 되었도다.

 이제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선거되고, 국무총리 이동휘 씨 이하 평소 우리 국민이 숭앙하던 지도자로 통일내각이 성립되도다.

 우리 국민은 다시 이민족의 노예가 아니요 또한 다시 부패한 전제정부의 노예도 아니요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이라.

 우리의 환희를 무엇으로 표하랴

 삼천리 대한강산에 태극기를 날리고 이천만 민중의 소리를 합하여 만세를 부르리라.

 오직 신성한 국토가 아직 적의 점령하에 있나니 이천만 자유민아 이렁나 자유의 전쟁을 벌일지어다.

 대한민국 원년 10월 31일 

 대한민족 대표

 박은식, 박항, 박세충, 안정근, 안종술, 조선홍, 오능조, 허완, 최정식, 최지화, 도인권, 정운시, 연병우, 신태화, 한우삼, 고일청, 이상로, 이락순, 이병덕, 이종오, 이화숙, 이근영, 명제세, 김구, 김희선, 김경하, 김찬성, 김가준, 김기창, 김철.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가

https://youtu.be/T6taKr6FZ8w

[1절]

 자유민아 일어나서 만세 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불러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 총장과

 국제연맹 여러 특사 만세 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2절]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

 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라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

 동포여 소리쳐서 만세 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3절]

 자유민아 일어나라 마지막까지

 삼천리 신성국토 광복하도록

 개선식 독립연의 날이 가깝다

 동포여 용감하게 일어나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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