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유대교에 대해서 글을 작성하였는데요. 그리스도교는 어떤 것인지도 알아봐야겠죠?
그래서 2탄으로 준비한 그리스도교를 글 포스팅 해봅니다.
그리스도교(카톨릭/기독교)
그리스도교에서 구약 성경은 '신약',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로운 계약과 비교하여 '구약', 곧 옛 계약에 관한 성경이다. 그러나 마치 옛 계약과 이를 증언하는 구약 성경이 그 가치를 상실한 것처럼 이 두 계약 사이의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러한 견해는 특히 기원후 2세기에 마르키온이라는 사람이 드러냈다. 그는 구약 성경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고서 배척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신약 성경 자체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구약 성경은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유일한 성경이었다. 예수님은 당신 복음의 기초로서 구약 성경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셨다.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본문의 본래 의미를 초월하는 완전한 경지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충만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이스라엘의 희망의 근거였던 약속의 실제 내용을 인간이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원의 신비를 가리켰다.
이처럼 어디를 보나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이 되었던 구약 성경을 친히 완성하신 분으로 보고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다. 교회는 부활 사건에 비추어 예수님에 관한 사건과 행위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고자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서로 대비되는 사건들, 성공과 실패, 죄인들과 성인들의 역사와 더불어 예비의 역사를 상기시켜 준 옛 본문들을 모두 다시 읽어 나갔다. 예수님의 메시지, 그분의 중개 사명, 모든 민족들의 구원,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첫 번째 성경 안에 기초되고 예고되고 예시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이유에서 신약 성경의 적지 않은 책들은, 구약 성경에 담긴 긍정적 가르침을 잃지 않거 메시아 곧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오심에 관한 예고를 찾아내고자 구약 성경의 본문들을 새롭게 해석해 나갔다. 또한 신약 성경은 그 자체를 자족하는 책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약 성경은 그 완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약 성경의 '연속'일 때에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교가 구약 성경에 대하여 일정한 자립성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도 지적해야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그리스도교적으로 메시지를 변경시키려고 성경 본문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뿌리이기도 한 바로 그 뿌리 위에 접목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복음서의 내용을 분명하게 밝히고 유다인(유대인)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고자 그리스도교의 첫 신학 체계가 이루어졌다. 아담과 모세, 다윗과 고통 받는 종, 임마누엘과 구름을 타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에 관한 표상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언어를 엮어 내도록 이끌었다. 분명 신약 성경의 언어는 부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언어는 성경의 저자들과 독자들이 살고 있는 문화 세계의 자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밀도 있는 나말과 문장으로 짜여 있다.
이렇게 히브리 말 성경은 유대교와 그리스교의 바탕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의 서막 정도로 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환원적인 독서 방법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여러 주제들, 예를 들어 인간의 기원 문제, 사회생활, 나아가 이해하기 힘들고 아득하기만 한 문제로 보이는 하느님 체험 등과 같은 주제들은 신약 성경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독자를 첫 번째 성경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성경의 이 첫 번째 부분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모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구약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전쟁에 개입하시는 문제, 학살 문제, 또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관습 문제 등이 있다. 물론 이런 문제에 관한 본문들을 배척하거나 애써 정당화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본문들은 우리가 성경 본문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멀리 떨어져 잇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 본문들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오늘을 위한 의미를 찾아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성경 각 권의 입문과 각주가 이 점에서 독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전달자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교회는 성경 본문에서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 전체가, 잦은 역사적 비극으로 갈라진 교회들의 공동 보화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교회 일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표지가 아닐까?
[자료출처 : 주석 성경 구약편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자, 여기까지 그리스도교에 관련하여 유대교(유다교)와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카톨릭 신자이다보니, 이와 같은 말을 꼭 강조하여 다시 한 번 작성하고 싶은데요. 위의 글에서 발췌를 또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에서 "하느님 말씀의 전달자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교회는 성경 본문에서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고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성경 전체가 잦은 역사적 비극으로 갈라진 교회들의 공동 보화라는 사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교회 일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표지가 아닐까?"라는 말을 하였는데 여기서 필자는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고자 힘쓰다.' 이 말을 강조하고 싶다. 도대체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건가? 질문을 하고 싶지만 우리는 지혜를 달라고 말을 해야한다.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지혜말이다. 솔로몬 또한 바라는 것은 '지혜'였다. "지혜"를 청하자. 그래야 본래 복음의 말씀인(구약 성경)을 완성시키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바통을 이어 받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종교적인 부분에서 이해를 해야하는 것인지 글을 읽고 한 번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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