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한국사 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에 대하여 작성하게 되었는데요. 일본의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수륙병진계획(수륙양동작전)을 완벽하게 틀어막게 되면서 中國의 명나라의 멸망을 잠시 늦춰지게 만들어 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의 순간을 지금 이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작성해봅니다.
"위대한 해전 한산도대첩"을 정리해보자면!!
1. 일본군의 수륙병진계획(수륙양동작전) 실패의 근본원인
2. 한반도 서해안 및 남해안 해상권 확보
3. 근현대 전쟁사의 기본 작전의 토대가 되는 전략가.
4. "학익진 전술"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 7월 일본 최고의 장수 와키자카를 상대로 이순신/이억기/원균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주력대를 개박살낸 전쟁사.
※ 일본군 수륙병진계획 철퇴를 부여. 남해안/서해안 해상력 장악.
먼저, 일본군의 수륙병진계획을 알아두어야 한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빠르게 한양(조선의 수도)를 점령하기 위해 수륙병진계획을 계획하는데 이는 다시말해 양동작전이다. 오늘날 양동작전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 다발적으로 계획하는 것으로 육지로 북상하는 육군과 해군으로 상륙작전 및 보급로 확보가 주목적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해군으로 보급품(식량배달)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게 이순신 장군 때문에 실패했다고 보면 된다.
이어 한산도대첩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한산도대첩은 일본군에게는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수륙병진계획을 실행하여 조선의 왕 선조가 있는 의주까지 올라가 잡아야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명군의 원병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으나 물자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체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산도대첩에 나아가는 일본군 장수는 조선군의 7~8만명이나 되는 부대를 단 1,600명으로만 무찌른 일본의 전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의 장수였던 와키자카가 일본의 수군의 장군으로 임명되어 한산도대첩에 출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얼마나 한산도대첩에 일본군이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순신장군은 근현대사 해군사의 근본이 되는 전략가이자 한산도 대첩의 핵심 "학익진 전술"
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살펴보자. 한산도 대첩은 조선군에게도 일본군에게도 중요한 전투였다는 사실은 앞서 일본군 수군 장군을 임명시켜 출정시켰다는 점과 전라좌수군만이 아닌 전라우수군과 경상우수군과 함께 하였다는 점에서 한산도대첩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 다시 한 번 기억하길 바란다.
한산도대첩에 앞서 이순신 장군은 옥포/당포/당항포/율포 등 연전 연승을 달리고 있었으며, 이에 조선수군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시작하며, 일본군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였다. 이에 심리적 요인에서 이순신 장군은 작전을 하기 전에 사기 진작을 위한 것에서부터 치밀하였다는 점, 이에 일본 수군과 전면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심리 요인이라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산도대첩에서는 2가지의 작전을 살펴볼 수 있다. "유인책과 학익진" 고대사부터 이어져 온 작전인 유인책을 통해 '목'지점에서 격멸하는 작전이기 때문에 볼 수 있겠으나 전면전에서 화포로 일본군을 괴멸시켜버리는 작전에서 화포의 사거리에 대한 수치데이터를 그대로 뽑아 나온 학익진 전술에 가장 큰 찬사를 보내야 하는 면이다.
당시 해전은 배와 배가 부딪혀 백병전을 많이 가졌다는 점에서 얼마나 신박한 아이디어인지 알 수 있다.
한산도대첩 전개과정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견내량의 주변이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해 한산섬 앞바다로 유인책을 펼침.
-한산섬 앞바다로 끌려나온 왜군에게 학익진을 펼침
-지자총통/현자총통 등 각종 총통을 쏘면서 돌진
-결과: 중위장 권준이 층각대선 1척 나포, 47척 분파 12척 나포.
현(現) 군대의 지휘자, 지휘관들이 이순신장군을 통해 작전 정리
-병사들의 심리적 요인,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군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아군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 적군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
-전면전에서의 수싸움
-'유인책'/'목'지점 선정의 중요성/작전반경 및 작전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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