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Lazarus Kong(공준성)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포스팅하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감기로 인해서 글을 쓰지 못했었네요. 자, 이것은 핑계고 다시 한 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신약성경의 내용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대해 읽고 묵상해봅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 [히브리서 3, 7-4,13]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사십 년 동안 그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듣고도 반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보듯이, 과연 그들은 불신 때문에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고, 또 예전에 기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하고 말씀하실 때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을 안식처로 이끌었다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한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 참안식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있는 생명이며, 이 생명을 통해 '힘'으로 능력을 보여주심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이와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듣고도 반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또 하느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 시체가 되어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또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보듯이, 과연 그들은 불신 때문에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하느님께서 '분노하신 맹세'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는 인물들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창조하실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하느님과 같은 핏줄로 만드셨으며, 하느님을 닮은 창조물로 만드셨다는 것이죠. 자, 지금 이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코로나와 관련된 전염병도 중세시대의 흑사병과 같이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을 만드신 것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자, 어떠한 나라의 각 지도자들 또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택된 이들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이를 선택하여 부르짖으며, 이 시대의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분노하신 맹세'에서 다시 회개하고 하느님의 안식을 찾기 위한 '오늘'이라는 날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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